이야기 한국사 김익두

나 말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신화'라는 표제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단군'신화이고 '고주몽설화'설화를 말하지 않을까? 문헌에 전하는 몇 개의 신화를 배우면서도 그 당시에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닐었기 때문에 이름정도만 기억하고 국사 주관식 정답으로 써 넣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뒤 그리스 로마 신화 인도 신화 중국 신화 북유럽 신화들을 배우면서 그제서야 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한국의 여타의 신화처럼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인물과 건국 신화들만으로 가득할까라는 의문이었다. 이 단순한 의문이 그 때부터 한국신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한국 신화에서도 신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신화>(서정오 , 현암사)를 통해서였다. 수 많은 신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마을을 이뤄 살고 있었다. 외래의 신화들처럼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비천하다 멸시당했던 만신(무당을 대접하여 이르는 말)의 무가 속에서 은자의 삶을 살면서 신으로서 인간들의 삶의 기복을 품어내고 있었다. 외래의 신화들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화려하거나 위엄을 앞세우지 않고 인간들 곁에 함게 숨쉬는 신들이었다.

 

옥황상제붙터 시작해서 대별왕 소별왕 오늘 장상 할락궁이 바지대왕 삼신할머니 바리데기 군웅신 저승차사 강림도령 강상이 손님네 사만이들의 신들은 각자의 소임을 다했지만 그들은 인간 세상의 저편 저승에 기거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이었다. 문자로 남지는 못했다. 혹자들은 무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들은 현세 기복적인 신들이라서 신신화로서의 권위가 없다고 하기도 했고 신화 연구 영역에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글로 남기는 것이 역사라지만 입말의 시대에도 역사는 존재했으며 그 역사를 말하는 것이 음성인 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만하다.

 

문서에 기록된 한국신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책이 <이야기 한국신화>이다. 한국에서 회자되어지는 신화들 문헌 속에 살아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히고 독특한 시간과 공간 체계를 선언한다. 주로 인용된 책들은  ,<부도지> , <환단고기> <규원사화> 를 중심으로 신화를 이야기하고 신화의 중심에 단군신화를 두고 선천시대 중천시대 후천시대로 신화의 시대를 구분하고 문헌에 나오는 신화를 제시하고 후반부에는 무가에 전해지는 우리네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개정판 23쪽 마지막 한 문단을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한국 신화의 근원을 단군신화가 아닌 다른 것 예컨데 무속신화 같은 것에서 찾고자 하는 연구 작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어서 후반부에 제시한 무속에나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는 스스로의 논지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하다. 게다가 구전으로 전해지는 무가를 부정하면서 , 채록한 자료는 각주를 달아 어떤 사람에게 채록했다는 자료를 제시하고 ㅇ있는데 이것은 일관성이 없어보인다.

 

<이야기 한국신화>는 다양한 신화들을 살피면서 우리가 중국의 신들이라고 알게 된 몇몇 신들이 옛조선의 시들이었음을 이야기하는데 <부도지>와 <환단고기>의 기록에 근거한다. 말들의 시대가 끝나고 기록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기록은 <삼국유사>에 의존해서 설명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혁거세 설화에서 시작해서 시조 설화들을 풀어놓는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듯하다. 첫부분은 단군의 이전 시대이고 두번째 부분은 <삼국유사>에 기댄 역사의 시대이고 세번째 부분은 현세가 아닌 저 넘어의 세계의 신들을 무가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이야기 한국신화>는 이 책이 아니었으면 <부도지><규원사화><환단고기><삼국유사><우리가 꼭 읽어야할 우리신화> 등 5권이 넘는 책을 읽는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각 책에서 시간의 흐름에 맞게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고 배열해놓고 있다. 한 권으로 다양한 신화를 만나기에 적당해 보인다. 그러나 <삼국유사>나 <우리가 꼭 읽어야할 우리신화>정도를 읽은 사람이라면 초반부만 읽어도 좋다. 창조설화들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수확이 있다. 

by 유랑인 | 2008/08/16 17:26 | 트랙백 | 덧글(0)

혜초 - 김탁환 - 민음사

<왕오천축국전>이라고 하면 혜초였고 혜초라고하면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연관 키워드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도 말해야 살아남았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면 어디선가 날아오는 주먹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왕오천축국전>이 '다섯 천축국'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인데 잘못 읽어서 <왕 오천 축국전> 오천개의 동물 나라 갔다 왔다로 해석했던 기억이 새록 새록하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기는 내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김탁환을 처음 만난 것은 <방각본 살인사건>이라는 추리물이었다. 처음 읽어보고 오 제법 신선한 걸 시대도 살아있고 문화도 두루 밝혀두었고 역사적인 인물을 제법 잘 데려왔던 글이었다. 그 이후 < 불멸의 이순신> <허균 최후의 19일> 등의 저자인 것을 알게되었다. 역사의 한 부분만 차용해오고 논리적 근거성이 부족해도 역사를 소설화 했기 때문에 팩션이라고 뭉텅그려서 말하던 시절 , 제법 읽으만한 팩션을 쓰는 사람을 찾았다고 했다.

 

김탁환의 진가는 개인적으로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작품과 <나 황진이>에서 진가를 발휘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에서는 김만중과 희빈 장씨의 대결이 볼만했고 그 사이에 소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했던 부부이 있어서 즐겨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 황진이>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데 황진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재구성할 때 여러곳의 시들을 가지고 사실과 허구의 실들을 씨줄과 날줄로 짜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무수한 의미들이 녹아들었던 작품이다.

 

김탁환 작가가 <혜초>라는 책을 출간했다. 두 권 분량인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라고 했다. 정수일 선생이 주해한 <왕오천축국전>을 저본으로 삼고 글을 쓰면서 혜초와 고선지 장군을 연결시키고 - 혜초가 중국에 돌아온 것과 고선지 장군의 생몰년대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란수라는 인물과 오름과 내림이라는 인물들을 글 플롯 사이에 투입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왕오천축국전> 정수일 본을 보면 고선지와 혜초가 만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혜초가 중국에 도착하고 안서도호부 관할 지역에서 장안까지 도착하는 사이에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김탁환은 이 부분을 <혜초>의 이야기판으로 삼은듯 하다. 고선지는 그 당시 안서 도호부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며 - 사실 고선지 평전을 읽지 않아 잘 모른다 - 고선지의 개략적인 내력을 봐서는 안서도호부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역사적 사실에서 허구가 개입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혜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혜초>는 한 편은 왕오천축국전의 한 부분이고 , 한 편은 소설의 일부이다. 하지만 <왕오천축국전>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나 황진이>에서 서술하듯이 역사적으로 남은 사실 위에 소설가적 상상력이 더해졌다. 그러므로 <왕오천축국전> 즉 소설에서 혜초가 기록했다는 부분도 사실은 허구다. 그러므로 완벽한 소설이다. <왕오천축국전>에서 처음 시작은 몇 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혜초>에서 언술되는 첫부분은 실제 기록보다 유장하고 치밀하다. 이것이 소설가의 힘이라면 힘일터 ..................

 

이제 <혜초>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인 혜초와 고선지의 등장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의 사건을 이끌어가지 않고 주연 인물이 엑스트라보다 더 적은 존재감을 준다. 꼭 양반이 비루하고 물색없어서 자신의 양반 신분을 란수와 내림과 오름에게 팔아버린 것 같다. 이런 말 하면 조금 뭣 하지 모르겠지만 허접한 에스에프적 사건을 혜초와 고선지 그리고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질좋은 고급 포장지로 포장한 듯하다. 결국 이런 것은 역사소설의 장르에 넣을 수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왜 있지 않는가 밖은 매우 풍성하고 먹을게 많은 것 같은 과일바구니를 막상 풀어보면 별로 먹을게 없다. 하긴 알려진게 없으니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역사에서 불러낼 수 없으면 그냥 그대로 두자. 죽은 사람이 다시 무덤 밖으로 불려 나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해보면 알텐데 ? 그들은 허리를 굽힐 힘도 없다.

 

김탁환씨가 김탁환 작가이길 바란다면 몇 문장 남지 않은 < 왕오천축국전>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소설가적 상상력으로 기워내서 해초의 외면적 사건이 아니라 해초의 내면을 추척하는 것이 더 김탁환스러운 글이 완성되지 않았을까 싶다. 

by 유랑인 | 2008/08/11 00:45 | 트랙백 | 덧글(0)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 , 푸른숲

책들이 그득하게 나오는 서평책을 읽었던 기억은 아마도 장석주의 < 강철로 된 책들>이 아니었을까? 대학교 때  책 좀 읽는다는 선배가 권해준 책이었는데 표지부터 양장으로 되어있어서 강철은 강철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양장으로 된 책들을 보면 무조건 반사로 한 숨을 쉬게 된다. 양장의 그 딱딱함 속에 절망한다. 저 포피를 뚫으면 그 속에 코코넛의 과즙이 가득할 것이지만 그 표피를 뚫기가 여간해서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 책 속에 소개된 책들은 몇 권 읽지 못했는데 <야생초 편지> <서재 결혼시키기> <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나 황진이> <두물머리> <미국의 송어낚시> 정도다 <강철로 된 책>을 덮으면서 정말 강철로 된 책이야라는 말을 두번은 한 것 같다.

 

그 이후로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서평집도 몇 권 읽게 될 기회가 생겼다. 그 중에 하나가 정혜윤의 < 침대와 책>와 책인데 각각의 상황에서 읽을만한 책들을 소개했는데 자신의 문장과 감성의 흐름 사이 사이 자신이 읽은 책들을 끼워 넣고 그 책에서 기억하고 있는 문장의 편린들을 끼워 넣어서 여타의 서평집보다는 좀더 폭신폭신한 서평책이기도 한 것 같지만 서평책이 아니기도 한 책을 만났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책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이 많은 책을 다 읽고 이 많은 문장의 편린들을 다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침대와 책>이라는 책을 출간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들 혹은 그녀들을 불러보면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11인이다.  11인의 각기 다른 삶의 스팩트럼 속에서 지금의 그들이 있게한 책들을 이야기하는데 , 각자의 이유는 달라도 삶 속에서 한 권의 책이 그들의 삶에서 일정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이 한 권의 책들을 소개하고 거기에 정혜윤의 이야기가 덧붙는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녀가 읽은 책 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찌되었건 11인이 각자의 분야에서 입지를 굳히기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어떤 종류의 책들이든 11인과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강요한 적은 없었고 자의든 타의든 책과 친구먹을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11인은 살았다는 점이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다시 한번 책과 책을 읽는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10명은 알겠는데 1명이 낮설은 사람이 있었다. 다시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곳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들이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듯이 우리들도 우리들이 있게한 한 권의 책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은 어떨까? 

by 유랑인 | 2008/08/11 00:28 | 유랑인 책을 읽다 | 트랙백 | 덧글(0)

게르만 신화 , 바그너 , 히틀러 - 안인희

박상륭을 처음 접할 때 - 어부왕의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 의 일이다. 그저 문학읽기에 젖어있던 나는 박상륭의 문학을 접하면서 문학이 문학 이외의 영역을 얼만나 흡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문두름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들어오는 것은 모조리 다 먹이로 삼는다. 박상륭의 손아귀에서 바스라지고 재구성된 것은 신화였다. 신화의 겉이라도 핥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읽기였다. 이 때까지만해도 나는 신화에 대해 무지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껍질만 알고 그 내용 조차도 알지 못한 상태였다. 

 

신화는 상상의 투사이면서 역사의 소산이기도 했다. 상징과 비유의 옷을 입으면서 역사는 신화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고 부풀려지거나 윤색된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후대에 채집되어 신화의 꿰미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신화에서 잊혀져버린 옛날의 영광과 영웅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신화라고 하면 <신화의 바다>(박영혜 , 정경남, 숙명여자 대학교 출판국)를 이야기할 때도 언급한 일이 있지만 신화를대표하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교양있는 사람인 척이라도 하려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언급된 한 부분 정도는 알고 있거나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했다. 모든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망토 아래에 감추어지거나 드러나기를 꺼려했다.

 

진실은 언제라도 어떤 방법으로라도 밝혀지기 마련이어서인지 신화를 읽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뿐만 아니라 다른 신화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감추어진 얼굴들을 찾아내어 읽었다. 북유럽 신화, 수메르 신화, 인도신화, 아랍신화와 많은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신화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기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화려함보다는 가리워진 것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했다. 책들을 구경하거나 읽을 때 어떠한 종류의 신화라는 활자에 먼저 시선을 주었다. 다양한 신화의 의미는 그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의 곁으로 왔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눈여겨 본 책이다. 바그너와 히틀러에 관심이 간 것이 아니라 '게르만 신화'라는 것에  주목했다. 북유럽신화의 또다른 이름 게르만 신화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오딘과 로키 지크브리트 라그나뤼크 아스가르드 그리고 신이면서 죽음을 맞이해야했고 멸망을 맛봐야했으며 다시 세계가 재구축되는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들과는 차이가 있어서 눈여겨 보고 있는 신화였다.

 

첫 부분에서 몇 가지의 신화의 원형을 밝히는데 이 신화는 다음에 언급될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바그너에 의해 변형되고 수용된다. 변형되고 수용되기 이전의 원형을 짚어 볼 수 있는 기본 골격을 제시한다. 바그너의 경우 <니벨룽겐>에서 신화의 차용이 가장 돋보이는데 <반지의 제왕>에서도 나오는 절대반지에 얽힌 슬픈 혹은 잔혹함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두번 째 부분에서는 바그너의 생애와 그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있다. 오페라에서 반영된 바그너의 사상이라던지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래도 주목해야할 것은 그의 작품들이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작품이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되게 장치했는가다. 이것은 저자가 히틀러와의 연관성의 고리를 만드는 논리적 장치로 이용된다. 바그너의 오페라의 경우 음악이 적재 적소에 사용되었고 전체는 불화하지만 부분은 아주 섬세한 오페라를 만들고 이야기보다는 무대 효과 즉 부분에 치중함으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획득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중대한 문제는 예술이 도구가 되면 그 순간 잠재적인 폭발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폭발력은 순기능을 할 수도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

 

바그너의 이러한 연출은 니체에 의해 공격을 받는데 니체는 초기 바그너를 숭배하였으나 후기로 갈수록 바그너의 그릇된 오페라의 한계를  "젊은이들이나 예술에만 빠진 멍청이들 , 여자들 , 그리고 민중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복잡하고 섬세한 예술적 취향은 잊어버리고 작은 아름다움을 감각성과 함게 버무리고 도덕적인 겉모습을 취하고 거대 양식을 동원해 그들의 생각을 지워버리고 , 볼거리가 풍성한 대평 무대를 제공하라 그리고 실제 의도는멋진 표현 형식으로 감사 잘 보이지 않게 살그머니 내놓아라"(269)라고 지적한다.  대중예술이 예술의 한 부분이 아니라 가리고 선동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바그너에 대한 니체의 지적은 앞으로 다가올 데카당스적 미래에 대한 예언 " 바그너의 음악이 단순히 음악과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임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대규모 무대 효과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최면을 걸어 특정한 방향과 주제를 향해 이끌어간다. 그의 무대는 사람들의 이성이나 예술적 취향이 아니라 오로지 감각성에 말을 걸기 때문에 강력한 세뇌 효과를 가진다"(267)고 말한다. 이러한 니체의 예언을 그대로 이용한 사람이 히틀러다.

 

 

세번 째 부분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히틀러이다. 히틀러의 생애와 세계관이 소개된다. 바그너가 히틀러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논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 히틀러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히틀러가 바그너의 무대 연출론을 차용하여 정치 선전에 이용한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하는데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히틀러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바그너여야 하지만 히틀러가 정계에 등장할 때 쯤 바그너는 죽고 없다. 즉 히틀러와 브람스의 유사점을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영향 관계를 설명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한계가 있어보인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의 논리적 취약점은 장정일의 공부 중 <바그너의 경우>에 언급되어있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를 읽고 궁금하다면 읽어봐도 좋다. 장정일의 글에서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미약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제시한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에서 게르만 신화에 관심이 생겼다면 안인희가 쓴 <북유럽신화1,2>를 더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고 바그너의 한계 혹은 니체와의 대립에 관심이 있다면 <니체 전집 15>(책세상)의 '바그너의 경우'를 읽어 보면 될 것이고 히틀러에 관심이 생겼으면 시중에 나와있는 히틀러의 자서전이나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by 유랑인 | 2008/08/07 21:37 | 유랑인 책을 읽다 | 트랙백 | 덧글(0)

신화의 바다 - 숙명여대 출판부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아도니스 헬리오스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오딘 엔릴 안 엔키 이난나 오리시스 로키 브라흐만 시바 헬 펜리드 요르문간드는  왠지 좀 낮설고 어색하지 않은가? ?앞에서 언급한 단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이고 뒤에 언급한 단어는 다른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들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어서 귀에 설다.

 

     신화라는 말을 접하게 될 때 처음 접하는 부류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각하게 된다. 신화계의 베스트 셀러다. 그만큼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스테디 셀러는 없을까? 북유럽 신화가 있고 인도 신화가 있고 수메르 신화가 있고 이집트 신화 정도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국가 신화들이 존재한다.

 

     <신화의 바다>는 자칫 잘못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지엽적일 수 밖에 없는 시각을 북유럽 , 인도 , 수메르 신화를 제시하면서 지엽적이고 편협해질 수 있는 시각의 확대를 꾀했다.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눠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태초의 장 , 영웅의 장 , 단죄와 멸망의 장 신화분석의 장으로 나눠져 있다. 세 부분은 신화의 기승전결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화를 신화로만 보지 않고 그 시대를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네번째 신화의 분석장까지 제법 탄탄하다.

 

     헤르메스의 이야기야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고 , 북유럽신화에  로키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는데 , 로키는 한 마디로 말하면 말썽꾼이자 북유럽 신화 신들의 전쟁인 라그나뤼크 (혹은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는 중요한 인물이다. 전쟁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명한 신들의 전쟁이 생각난다. 티타노마키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전쟁은 한 번 뿐인 줄 알았는데 신들의 전쟁을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어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기도 했다.

 

     일으면서 책의 편제가 신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그 첫 관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쉽게  흥미롭게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황하고 방만하지 않고 탄생과 발전과 멸망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눈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 조금 정독하고 어디가서 신화이야기를 듣는다면 조금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신화를 배우는 사람에게 딱 맞는 책이다.

 

     <신화의 바다>라는 제목답게 , 각 장에 다양한 지역의 신화들을 가지고 와서 설명하고 있다. 마치 인도의 신들이 불사의 힘을 얻기 위해 마셨던 암리타를 만들던 그 때처럼 다양한 재료들을 휘휘저어내는 것처럼 다양한 신화들이 큰 주제를 중심으로  섞이고 있다. 이러한 것은 새로운 효과를 보이기도 하는데 다양한 신화를 읽음으로서 개별적 신화가 가지는 집단적 특징들 혹은 공통점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재미를 좀 더 느껴보시려면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를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을 지적해보자면 저자도 인지하고 있지만 동서양의 신화 중에서 서양부분에 대한 언급이 많고 동양 즉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몽고 등의 설화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동양의 신화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해보니 조금은 슬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신화의 바다>는 충분히 신화에 대해서 빠져들 수 있는 책 같아 보인다. 이 책을 읽고 좀더 자세하고 전문적인 책을 읽어도 될 일이다. 자 그럼 신화의 바다에 빠질 때 빠지더라도 죽지 않게 암리타나 넥타를를 조금이라도 마셔두는 것이 좋겠다. 

by 유랑인 | 2008/08/06 19:35 | 유랑인 책을 읽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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